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스 로드리게스 (문단 편집) === [[뉴욕 양키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p642983484306.jpg|width=100%]]}}} || || '''{{{#ffffff 1,509경기 6,520타석/5,577타수 1,580안타 351홈런 1,096타점 1,012득점 779BB/1,292K 152도루 [br].283/.378/.523 OPS .900/OPS+ 136 wRC 1,105/ wRC+138 bWAR 54/fWAR 51.7}}}''' || 2004년 2월 15일, '''[[뉴욕 양키스]]'''가 3루수 [[애런 분]]의 부상으로 3루에 공백이 생긴 자리를 메꾸기 위해 올스타 2루수 [[알폰소 소리아노]]와의 빅딜을 제시하여 끝끝내 트레이드되었다. 이 당시 [[로빈슨 카노]]가 레인저스로 함께 트레이드될 뻔했다. 하지만 더 어린 유격수 유망주였던 호아킨 아리아스가 이적. 그리고 레인저스는 2010년까지 보장된 롸드의 연봉에서 연평균 $9M을 보조하고, 레인저스가 레드삭스와 합의했지만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내용들을 대부분 양키스가 커버했다. 해당 트레이드는 앞선 FA 계약과 함께 메이저리그 전체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우선 양키스의 라이벌인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발렌타인 데이의 참사라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또한 이 블록버스터 트레이드의 여파로 [[텍사스 레인저스]]의 [[마이클 영]]은 유격수로 전향했고, 에이로드는 양키스 이적 후에 '''24Kids'''라는 도발성 발언[* 텍사스의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서 자기 한 명 빼고 다 애들이라는 뜻이다. 즉 본인의 가을야구 진출을 막았다고 판단한 텍사스 선수들을 디스한 것.]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금지어]]가 된다.[* 시간이 오래 지난 현재도 양키스 팬들에게만큼 죽일듯이 까이진 않아도 텍사스 팬들에게도 심심찮게 까이는 중이다.] 에이로드의 본래 포지션은 유격수였지만 양키스에서는 [[데릭 지터]]의 존재로 인해 [[3루수]]로 전향했다. 사실 공격이든 수비든 당시 기준 에이로드가 지터를 압살하는 성적을 냈었는데, 양키스에서 당시 기준 양키스 팜 출신 원 클럽 맨에다 뉴저지 출신이기까지 한 지터의 인기가 워낙 높았기에 어찌보면 굴러들어온 선수였던 에이로드가 3루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여느 팀이든 그렇지만 양키스에서는 팜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를 당연히 더 선호한다. 1961년, 양키스의 [[로저 매리스]]가 단일 시즌 61홈런을 기록하며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갱신했을 때에도 이적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뉴욕 언론들과 양키스 팬들에게 미친듯이 까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루스도 이적생, 게다가 양키스의 영원한 라이벌인 [[보스턴 레드삭스]] 출신 이적생이라는 점.] 이로 인해 에이로드는 수비 부담을 덜게 됐지만 수비에서의 안정감이 비교적 떨어졌다. 2004년 새 포지션/새 팀/새 지구 등의 이유로 정규 시즌 155경기 36홈런 172안타 112득점 106타점 타율 .286 OPS .888로 에이로드치고는 상당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OPS는 1998~2009년 사이 가장 낮은 수치였지만 그래도 7.6으로 팀내 bWAR 1위를 기록하며 자존심은 지켰다. 또한 미네소타와의 ALDS에서 21타석 8안타 타율 .421 OPS 1.213, 보스턴과의 [[2004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37타석 8안타 타율 .258 OPS .895로 2009년을 제외한 이후의 부진과 달리 그럭저럭 활약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48홈런 130타점 21도루 OPS 1.031 bWAR 9.4'''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생애 두 번째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에인절스와의 ALDS에서는 23타석 2안타 2득점 0타점 '''타율 .133 OPS .635'''를 기록하며 대차게 망했다. 이후 "내 플레이는 내가 봐도 개 같았다."라는 어록을 남기며 '''A-DOG, 도그리게스'''라는 멸칭을 선사받고 만다. 에이로드의 양키스 포스트시즌 잔혹사는 이때부터였다. 2006년에는 35홈런 121타점 bWAR 4.5로 다소 부진했는 데다가 디트로이트와의 ALDS에서는 15타석 1안타 ''' .071/.133/.071 .205OPS'''라는 개막장 성적을 찍었다. 이로 인해 '''8번타자'''로 강등당하는 굴욕까지 겪고 에잇(eight)로드라는 멸칭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2007년에는 무려 '''타출장 .314 .422 .645 OPS 1.067 54홈런 156타점 24도루 bWAR 9.4'''을 기록했고 '''세 번째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해 약물 적발이 되지 않은 당시 기준으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명예의 전당]] 입성을 확정지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역대 3루수 최초의 50홈런과 최초의 150타점, 역대 3루수로서 2번째로 높은 장타율[* 1위는 1980년 [[조지 브렛]]이 기록한 .664]을 기록한 기념비적인 시즌으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140득점-50홈런-150타점은 [[베이브 루스]], [[핵 윌슨]], [[지미 폭스]], [[새미 소사]]에 이은 역대 5번째 기록이다. 한편, 클리블랜드와의 ALDS에서는 .820 OPS로 그럭저럭 했으나 팀은 광탈했다. 이러한 압도적인 2007 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당연히 옵트아웃을 선언[* 당시 하필 [[2007년 월드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우승을 하는 통에 눈치없이 언론에 보도하는 바람에 죽일듯이 까였다. 당시 월드시리즈 중계를 하던 해설자들이 소식을 듣고 뒤집어지는 바람에 팬들은 물론 전문가들까지 혼란에 빠졌다. 그 이야기를 팀이 우승을 앞둔 때에 듣게 된 보삭스 팬들은 우승을 앞둔 마당에 양키 선수의 소식을 들었다는 소식에 불쾌해하면서도 속으로는 [[야 신난다]]였다.][* 또한 이 옵트아웃 덕분에 그간 레인저스가 연평균 $9M 가량의 연봉을 보조해주면서 연간 $16M 가까운 금액에 롸드를 쓸 수 있었던 양키스는 저렴한 몸값으로 쓰던 롸드를 가만히 앉아있다가 잃고 말았다. 한편 레인저스는 08~10 3년간 연봉보조가 예정된 $21M을 아끼게 되어 쾌재를 불렀고, 보스턴의 우승을 지켜보던 양키 팬들은 안그래도 속 쓰린 통에 돈도 더 쓰게 생겼기에 무시무시한 분노를 쏟아냈다.]했는데 양키스는 옵트아웃을 하지 않으면 기존 계약 종료 이후에 5년 150M 계약을 더 추가해 기존 3년 80M 정도의 잔여계약까지 합쳐 약 8년 230M의 초대형 계약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그 이상 가치의 활약을 했던 에이로드는 거절하고 FA로 나왔다.[[https://youtu.be/9NEejbSef4o|#]] 당시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10년 $350M 이상'''이 아니면 계약하지 않겠다는 폭탄 발언을 했지만 이 말을 들은 에이로드가 본인도 아니다 싶었는지 보라스를 해고하고 자신이 직접 양키스와 협상하여[* 참고로 롸드에게 양키스에 고개 숙이고 들어가라는 조언을 해준 사람은 [[워렌 버핏]]이라고 한다.] 10년 $275M이라는 두 번째 계약을 성사시켰다.[* 여기에 600홈런, [[윌리 메이스]], 700홈런, [[베이브 루스]], [[행크 애런]], [[배리 본즈]]의 통산 홈런 기록 갱신 등의 마일스톤을 세울 때마다 추가로 인센티브가 발생해 3억 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양키의 돈'''으로 레인저스가 연봉보조 해준다거나 하는 그런 거 없다. 양키스의 제안대로 계약했다면 기존 연봉보조액을 제외하고 8년간 210M을 주는 계약이었지만 여기에 2년 65M을 더 줘야 하는 것.][* 사실 이런 정신나간 계약규모와 [[CC 사바시아]], [[요한 산타나]] 등 FA들이 시장에 나올 때 현질을 하여 에이스들을 영입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재계약을 하지 말 것을 주장했지만,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철없는 아들 행크가 이를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계약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행크의 에이로드 계약은 양키 팬들의 까임거리 술안주가 되고 있다. 양키스가 동생인 할에게 넘어간 것도 이 때의 무책임한 행보로 아버지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글렀다고 판단했다는 설도 있다.][* 이후 [[호르헤 포사다]]의 4년 $52M 계약, [[CC 사바시아]], [[A.J. 버넷]], [[마크 테셰이라]]의 영입, [[데릭 지터]]와 3년 $51M 재계약까지 겹치면서 양키스는 2억불의 페이롤을 쓰면서도 실질적인 전력은 $130M 정도의 팀으로 평가받는, 즉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는 먹튀군단'''이 되었다. 사실 버넷이나 포사다 정도를 제외하면 성적은 먹튀가 절대 아니지만 이들의 연봉은 성적이나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높다.] 사실 초반에 찔러보는 팀은 많았다. [[LA 에인절스]], [[보스턴 레드삭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수많은 빅마켓 팀들이 그를 노렸다. 하지만 보라스가 지나치게 올려치는 계약을 요구하자 모두 포기해버렸고, 에이로드에게 오퍼하는 팀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지경이 되자 에이로드 측에서 뒤늦게 보라스까지 해고하면서 양키스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해당 계약은 에이로드가 금액에 걸맞지 않는 부진한 활약을 보임과 동시에 약물이 적발되어 명예를 잃어버리면서 최악의 악성 계약으로 전락했고, 양키스와 에이로드의 악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첫 시즌인 2008년부터 에이로드는 금액에 걸맞지 않게 부진했다. 35홈런-103타점을 기록했는데 일부 부상도 있긴 했지만 [[마돈나(가수)|마돈나]]와의 불륜이 폭로되면서[* 일부 팬들은 '''롸돈나''' 커플이라 칭하기도 했다.][* 참고로 마돈나는 1958년생이고, 롸드 본인은 1975년생 17살 차이이다. 이모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부인과 이혼소송을 하는 등의 개인적인 문제들도 부진의 원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결국 부인에게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주고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정작 마돈나하고는 그냥 몇번 만나다 만 듯하고 다른 여자들과 열심히 데이트를 즐긴다는 소문들이 떠돌았다. 2011년에는 [[카메론 디아즈]]와 데이트를 즐기고 스프링 트레이닝에 데려오기까지 했다. [[파일:external/mike100915.files.wordpress.com/arod.jpg]] [[http://sports.news.nate.com/view/20101126n05021?mid=s1004&isq=3498|#]] 그리고 2009년엔 스테로이드 파문에 휩싸이며 명예가 실추되었고 부상에 시달리면서 30홈런-100타점을 달성할지 의문시 되기까지 했으나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2홈런, 7타점을 날리며 '''정확히''' 30홈런-100타점을 달성했다. 이로서 30-100을 무려 13번 기록, 메이저 리그 기록을 갱신했다. 덤으로 한 이닝 7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한 이닝 최다 타점도 갱신.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lex_Rodriguez_2009_World_Series_Trophy.webp|width=100%]]}}} || 그리고 2009년 포스트시즌, 그동안 포스트시즌에서 제몫을 못해 양키스 팬들에게 정규시즌용이라고 원성을 들으며 수많은 멸칭들을 얻었지만 이번에는 몸값에 걸맞는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며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 생애 첫 우승도 차지했다. 그러나 이것이 에이로드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활약이었다. 그 이후로 총 6번의 시리즈에서 총 22경기를 더 뛰었는데, 홈런은 '''단 하나도''' 치지 못했고 그동안 올린 타점 수(6점)가 2009년 월드시리즈 6경기동안 올린 타점과 정확히 같은 등 꾸준하게 말아먹었다. 2010 시즌엔 8월 5일 만 35세 8일의 나이로 '''최연소 600홈런 기록'''을 세웠다. 여담으로 599호에서 600호로 가는 동안 12경기, 46타수 무홈런이란 지독한 아홉수를 겪었다. 덤으로 600홈런-300도루도 기록하였는데 이는 [[윌리 메이스]], [[배리 본즈]]에 이어 3번째다. 거듭된 부상으로 점철된 우여곡절로 인해 30홈런 달성은 힘들어 보였지만 시즌 종료 3게임을 남겨둔 9월 29일에 기어이 '''13년 연속 30-100 기록'''을 달성해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타율과 장타율이 높지 않다는 사실은 향후 불안요소가 되기에 충분해보였으며 이 시기부터 3년간 타율이 계속 1푼 이상씩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2008년부터 타율변화는 0.302→0.286→0.271로 완연한 하락세를 보여주었다. 다만 09~10은 계속 잔부상을 안고 뛰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잔부상을 털어낸 11년 초반페이스는 가히 4월 한 달 동안에만 14홈런을 때려갈긴 07년의 페이스와 비견될 정도로 6월 말까지만 해도 타격정확도, 선구안, 장타력 등 모든 면에서 쾌조였으나, 6월 19일 [[시카고 컵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귀루하다 오른쪽 무릎 반월판에 부상을 입었고, 그 상태에서 무리해가며 출전하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결국 7월 12일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한달 반을 날려먹었고, 8월 말에 로스터에 복귀했지만 채 2할도 쳐주지 못하는 극도의 부진에 빠졌다. 결국 시즌 최종성적은 타율 .276, 16홈런 62타점에 그쳐 연속시즌 30-100을 13년에서 끝내는, 당시 기준 커리어 로우를 갱신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디비전시리즈 5경기에서 모두 클린업으로 나왔는데도 '''18타수 2안타로 시리즈를 말아먹었다'''. 특히 압권은 5차전으로 4타수 무안타 3삼진인데 그중 두 삼진은 7회 '''만루'''에서의 삼진과 9회말 2아웃에 마무리를 하는 삼진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이미 양키 팬 사이에선 [[마크 테셰이라]]와 묶어서 ''''덤 앤 더머''''라는 멸칭이 붙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